자연이 빚어놓은 미술관, 지질공원으로 떠나는 여행

수억 년 세월이 빚은 남한강·동해안 비경…‘경이 그 자체’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21/01/15 [14:09]

자연이 빚어놓은 미술관, 지질공원으로 떠나는 여행

수억 년 세월이 빚은 남한강·동해안 비경…‘경이 그 자체’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21/01/15 [14:09]

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으로 아름답고 중요하며 생태·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지질공원은 유네스코 3대 자연보존제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행위 제한이 가장 적고 지질·지형 ·생물·역사·고고·민속 등 다양한 유산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이다.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다른 제도와 달리 보존과 활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제도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환경부 장관이 지질공원을 인증하며, 자연이라는 바탕 위에 인문·역사·문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2020년 8월 기준 우리나라에서는 총 13개의 국가지질공원이 운영되고 있다. 신축년 새해에는 아름다운 생태를 그대로 간직한 지질공원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남한강 수면 위 20미터에 선반 달 듯 벼랑길…걷는 내내 짜릿!
절벽 한 굽이 돌면 또 다른 풍경…남한강과 주변 산세 ‘한 폭 그림’


해안 바위 사이에서 뾰족하게 솟은 촛대바위는 ‘그야말로 예술품’
추암출렁다리는 바다를 건너는 아찔함보다 거기서 보는 풍경 일품

 

1. 단양 지질 여행


단양국가지질공원은 2020년 7월 국내 13번째이자, 충청권 최초로 국가지질공원에 지정됐다. 도담삼봉과 석문, 선암계곡(상선암·중선암·하선암), 사인암, 구담봉 등 단양팔경, 고수동굴과 노동동굴, 온달동굴 등 석회동굴, 단양 여행의 핫 플레이스 만천하스카이워크와 두산활공장, 다리안부정합, 여천리 카르스트지형, 삼태산이 지질 명소 12곳에 포함된다.

 

▲ 절벽 가운데 큼직하게 구멍이 뚫린 석회동굴. 


단양국가지질공원에는 수양개역사문화길도 있다. 단양군보건소에서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까지 3.2km에 이르는 지오 트레일이다. 애곡터널 구간을 제외하면 평지가 대부분이라 산책 삼아 걷기 좋다. 수양개역사문화길은 ‘한국판 잔도’라 불리는 단양강 잔도, 이끼로 뒤덮인 이끼터널을 지나 단양 수양개 유적(사적 398호)의 유물을 만나는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서 마무리된다. 풍경과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요소를 갖춰 걷는 재미가 쏠쏠한 길이다.


수양개역사문화길은 단양군보건소에서 출발한다. 길은 남한강과 나란히 이어지고, 멀리 중앙선과 국도5호선을 잇는 상진대교와 상진철교, 그 위로 만천하스카이워크가 하얗게 빛을 발한다. 600미터 정도 지나면 상진철교 아래로 단양강 잔도 입구가 보인다.


단양강은 남한강과 지명을 더해 단양강이라 하고, 잔도는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달아서 낸 길’이다. 단양강 잔도는 상진철교 아래부터 만천하스카이워크 입구까지 총 1120미터다. 입구에서 800미터는 단양강 잔도를 대표하는 구간이자, 수양개역사문화길의 하이라이트다. 단양강 잔도는 거칠고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에 설치해 곳곳이 비경이다. 남한강 수면 위 20미터 높이에 잔도가 있어 걷는 내내 짜릿한 스릴이 느껴진다. 절벽 따라 급격한 곡선을 그리는 잔도를 따라 한 굽이 돌면 다른 풍경이 나타나고, 남한강과 주변 산세가 그림같이 어우러진다.

 

▲ 두 지점이 만나는 단양강 잔도. 


단양 지역은 화강암과 변성암, 퇴적암이 고루 분포하고, 석회암 지형이 많다. 단양강 잔도가 설치된 만학천봉의 절벽도 석회암 지형으로, 오랜 세월 용식작용을 거쳐 지금 모습이 됐다. 절벽 가운데 큼직하게 구멍이 뚫린 석회동굴이 인상적이다. 석회암 지대에서 잘 자라는 회양목도 자주 눈에 띈다.


단양강 잔도는 만천하스카이워크 입구에서 끝난다. 평탄한 길이 가파른 계단을 따라 애곡터널 위로 이어지고, 숨을 헐떡일 때쯤 터널 위를 지나 터널이 끝나는 지점으로 내려온다. 길 건너편에 무릎을 꿇고 슬픈 표정으로 아기를 안은 여인상과 그 뒤로 수십 명이 힘겹게 팔짱을 낀 모습을 표현한 부조가 있다. 1972년 남한강이 범람해 고립된 증도리 주민들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물탱크에 의지해 밤을 견디고 목숨을 구한 ‘시루섬의 기적’을 알리는 조형물이다. 물의 흐름을 견디기 위해 서로 팔짱을 끼고 부여잡는 와중에 목숨을 잃은 한 살배기 아기와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진다.


길은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까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간간이 차가 지나는 도로에는 낙엽이 쌓여 밟히는 소리가 좋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도로와 산길로 나뉘는데, 짧은 구간이지만 산길이 호젓하다. 산길을 벗어나 다시 도로로 내려서면 시멘트 구조물에 이른다. 전면이 이끼로 뒤덮인 이끼터널이다. 애곡터널, 천주터널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단양과 영주를 이은 중앙선 터널로, 지금은 이끼가 여행자를 불러 모은다. 이끼가 낀 구조물에 낙서가 많아 안타깝다. 이끼터널을 통과하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이 지척이다. 수양개역사문화길을 걷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 시멘트 구조물 전면이 이끼로 뒤덮인 이끼터널. 


수양개역사문화길에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이 있다. 만천하스카이워크는 만학천봉 정상에 25미터 높이로 세워진 전망대다. 남한강 수면에서 80~90미터 위에 있어 전망이 뛰어나다. 나선형으로 평탄하게 이어진 덱을 따라 오르면 단양 시내는 물론, 남한강과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만천하 경관은 단양국가지질공원 지질 명소 12곳 중 하나로, 애곡리 부정합과 단층, 습곡, 하안단구가 보인다.


최근 만천하스카이워크 아래쪽에 만천하슬라이드가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 산악형 슬라이드로, 워터파크의 슬라이드를 산악으로 옮겼다고 생각하면 쉽다.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긴 264미터로, 탑승용 매트에 누워 경사진 원통 내부를 미끄럼 타듯 내려온다. 만천하슬라이드에는 커브 구간 12곳과 원통 윗부분에 32개 투명 창이 설치돼, 시속 30km로 내려오며 스릴을 즐긴다.

 

▲ 만학천봉 정상에 25미터 높이로 세워진 전망대, 만천하스카이워크.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은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수양개 유적은 후기 구석기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걸친 유적으로, 특히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 제작소 50여 곳이 발굴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석기 제작소가 발굴됐다는 건 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룻돌, 몸돌, 격지 등이 함께 출토됐음을 의미한다. 구석기시대 역사와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 밀개 등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다.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은 수양개빛터널과 이어진다. 길이 200m 터널에 빛과 영상, 음향, LED 미디어 파사드를 접목한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눈과 귀가 즐겁다. 터널을 지나 외부로 나오면 화려한 LED 꽃을 수놓은 비밀의정원이 기다린다.


단양팔경은 옥순봉을 제외하고 모두 단양국가지질공원 지질 명소로 지정됐다. ‘단양’ 하면 떠오르는 도담삼봉(명승 44호)과 석문(명승 45호)은 석회암이 오랜 세월 물에 녹으며 생기는 카르스트 지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사인암(명승 47호)과 구담봉(명승 46호)은 관입한 화강암이 오랜 세월 풍화·침식 작용으로 지표에 노출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풍경으로 바라보던 단양팔경에 지질 이야기를 더하니 새롭게 느껴진다.

 

<글·사진/문일식(여행작가)>

 

2. 동해 지질 여행


지질은 ‘지각을 이루는 물질’이다. 단어 뜻이 여행과 무관해 보이는데, 지질 현상을 마주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자연이 수만·수억 년에 걸쳐 남긴 흔적은 경이 그 자체다. 사람 손길이 닿은 예술과 전혀 다른 감동이다. 그래서 지질 트레일은 지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여행이자, 자연이 빚은 ‘길 위의 미술관’을 걷는 여정이다.


강원도 동해시는 지질 여행의 보물 창고다. 익숙한 여행지가 지질을 기반으로 한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무릉계곡, ‘한국의 장자제’라 불리는 베틀바위, 도심에 있는 천곡황금박쥐동굴, 애국가 배경 화면으로 기억되는 추암해변 촛대바위가 동해시에 있다.

 

▲ 갈매기의 쉼터가 되는 촛대바위. 


추암해변 촛대바위는 ‘동해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다. 최근 몇 년 사이 여행의 편의나 볼거리, 즐길 거리가 부쩍 늘어 몰라보게 달라졌다. 애국가 첫 소절이 나올 때 등장하는 일출 명소 이미지는 여전히 강렬하다. 유튜브가 TV를 대신하는 시대에도 변함없다. 그 못지않게 지질 트레일 역시 ‘국가 대표’급이다. 애국가 배경 화면 이미지를 지우고 들여다보면 능파대의 진가가 드러난다.


능파대(凌波臺)는 추암해변 촛대바위 일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조선 시대 도체찰사로 있던 한명회가 이곳을 방문한 뒤 붙인 이름이다. ‘미인의 아름다운 걸음걸이’에 비유한다. 그가 촛대바위만 보진 않았을 것이다. 촛대바위 주변에서 추암출렁다리가 있는 곳까지 바위 하나하나가 대자연이 디딘 아름다운 걸음걸이다. 그럼에도 촛대바위가 도드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추암해변의 랜드마크, 촛대바위. 


추암(錐岩)은 송곳바위라는 뜻이다. 촛대바위의 다른 비유다. 그러니 추암의 랜드마크는 촛대바위다. 해안의 바위 사이에서 뾰족하게 솟은 촛대바위는 송곳이나 촛대라는 비유가 꼭 들어맞는다. 지질학에서 시 스택(Sea Stack)이라 일컫는 지형이다. 파도의 침식이 만든 예술품인 셈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게 보이고, 누구에게는 간절한 바람으로 보일 만큼 그 기묘한 형상이 번번이 사람의 마음을 간섭한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단원 김홍도의 ‘금강사군첩’에 담긴 ‘능파대’를 빌려 감상해도 좋다. ‘금강사군첩’은 단원이 1788년 정조의 어명으로 관동팔경과 금강산 등을 그린 화첩이다. 촛대바위전망대에 ‘능파대’ 모사가 있어 풍경과 비교하기 적당하다. 절리까지 그린 사실적인 묘사에 놀라고, 200년이 훌쩍 넘은 그림 속 능파대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한 번 더 놀란다.


촛대바위전망대에서 촛대바위를 보고 해암정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능파대에 어울리는 기암괴석 무리가 보인다. 파도와 바람이 석회암을 깎아 생긴 지형으로, 라피에(Lapies) 혹은 카렌(Karren)이라 불린다. 물론 그보다 ‘한국의 스린(石林)’이란 표현이 실감 난다. 스린은 중국 쿤밍(昆明)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능파대는 규모가 작지만, 과거 바다였던 스린과 달리 지금 바다와 접한다. 해안과 어우러진 석회암 무리가 촛대바위 못지않은 절경이다. 4년 전만 해도 철책이 있어 출입이 불가한 지역이었음을 떠올리면 감흥이 더하다.


기암괴석 무리의 내륙 쪽에 북평 해암정(강원유형문화재 63호)이 있다. 고려 시대에 집현전 제학을 지낸 심동로가 1361년(공민왕 10) 관직에서 물러나 세운 정자다. 동로(東老)는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가다’라는 뜻으로, 공민왕이 그와 이별하기 아쉬워서 내린 이름이다. 바다를 벗 삼고 후학을 양성하며 세월을 보낸 옛 학자의 기품이 서렸다.


해암정을 지나 촛대바위 반대편 언덕으로 오르자 추암출렁다리가 나온다. 2019년 6월, 바다 위에 놓은 길이 72미터 다리다. 추암출렁다리는 바다 위를 건너는 아찔함보다 그곳에서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조금 전에 본 능파대와 추암해변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 이사부사자공원까지 품어 동해와 삼척의 경계를 실감한다.

 

▲ 바다 위에 놓은 추암출렁다리. 


추암출렁다리를 건너면 추암조각공원까지 산책로가 이어진다. 대부분 출렁다리에서 돌아서기 때문에 공원은 한적하다.

 

소나무 산책로를 지나자 최옥영 작가의 ‘희망’, 정대현 작가의 ‘The Sailer’, 하영생 작가의 ‘풍요로운 탄생’ 등 조각품 약 30점이 나온다. 생각보다 넓고 편안한 공원이다. 추암 여행의 마무리는 추암해변이 어떨까. 형제바위의 다정한 풍경을 바라보며 한 해를 갈무리해봄 직하다.


동해무릉건강숲은 무릉계곡 초입에 위치한다. 친환경 힐링 숙박동과 테마 체험 시설(찜질방), 건강자연식당을 갖춘 웰니스 관광지다. 체류형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무릉계곡 일대를 여행하기에도 알맞다. 특히 지난 8월에 부분 개방한 ‘베틀바위 산성길’을 욕심낼 만하다. 무릉계곡관리사무소에서 베틀바위전망대까지 왕복 2시간쯤 걸린다. 길이 제법 가파르고 험하지만, 전망대에서 베틀바위를 보면 수고가 아깝지 않다.


천곡황금박쥐동굴은 4억~5억 년 된 수평 석회동굴이다. 베틀바위 산성길이 성인용 지질 트레일이라면, 천곡황금박쥐동굴은 가족 단위 지질 트레일이다. 우선 다른 지역의 동굴과 달리 시내 중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총 길이 1510m 가운데 탐방로는 돌리네(석회암 지대가 물에 용해돼 깔때기 모양으로 파인 웅덩이) 지역 810m다.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2019년 6월 새롭게 단장해 재개장했다. 동굴 VR 체험이 가능한 ‘GG Park’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방지를 위해 휴장한다.

 

▲ 논골담길 바람의언덕에서 본 묵호항. 


논골담길은 최근 동해시의 떠오르는 감성 여행지다. 한때 어업으로 번성한 마을이 벽화마을로 부활해 여행자를 부른다. 마을 이야기를 벽화와 조각 작품에 담아 골목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논골담길 바람의언덕은 묵호등대와 더불어 마을 전망 명소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카페 앞 계단식 테라스에 앉으면 묵호항과 바다 풍경이 눈에 가득 찬다. 건너편 먹태 덕장은 이맘때가 제철이다. 찬 바람에 말려 ‘바람태’라 불리는 묵호 먹태 맛이 그만이다. 논골담길은 주민들이 생활하는 마을로, 예의를 지키며 돌아봐야 한다.

 

<글·사진/박상준(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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