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이 사람]‘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 김영권 작가

“만일 지옥이 있다면 형제복지원 바로 그곳 아니었을까?”

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21/04/26 [17:00]

[주목! 이 책, 이 사람]‘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 김영권 작가

“만일 지옥이 있다면 형제복지원 바로 그곳 아니었을까?”

김수정 기자 | 입력 : 2021/04/26 [17:00]

“형제복지원 사건은 많이 알려졌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다”

“가해자들에게 정당한 처벌 가하도록 힘 보태는 계기 되었으면”

 

▲ 장편소설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표지.  



지난 1월 출간된 장편소설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저자 김영권은 이렇게 썼다.

 

“만일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 아니었을까? 부산 시내에 실재했던 악의 만화경. 신이 만든 하계가 아니라 인간이 세워 운영한 한국판 홀로코스트!”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은 부산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에 있던 ‘형제복지원’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기존의 형제복지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은 과거의 비극을 전개하지만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김영권 작가는 말한다.

“그동안 선감도 어린이 강제수용소, 청소년 북파공작원, 몽키하우스 등 예사롭지 않은 소재를 소설화해 왔지만 왠지 형제복지원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이유였던가? 그 희대의 인간 말살 지옥이 오래 전 한때 언론 방송의 집중조명을 받긴 했으되, 피상적인 폭로성 기사와 일과적 멘트로 끝났을 뿐 악의 근원에 대한 탐찰이 미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보니 꽤나 알려지긴 했음에도 폭로 이후 형성된 딱딱한 선입견이 더 이상 내부로 진입해 진실을 파내려는 의지와 흥미 자체를 막아 버린 건 아닐까? 혹은 형제원이 부산 시내에 또아리 틀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대한민국 제2의 대도시 속에 그런 악마 제국이 존재할 리 없다는 선입견 탓에, 당시 길 가던 시민들마저 그 건물을 무슨 유익한 사회 시설로 생각했고, 언론 보도를 보면서도 국민 모두가 예사로운 한국의 불법적 초상(肖像)으로 지레짐작했는지 궁금한 노릇이다. 오래 전 취재차 부산 주례동까지 가보았으나 그 당시의 지옥 현장은 사라지고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막막했었다. 만약 한겨울 폭설 속에 비닐 천막 하나 쳐놓고 단식하는 피해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보지 않았다면 나도 그냥 지나쳐 버렸으리라.”

 

“그들의 분노에 동참하고파”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은 주인공이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쓰기 위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는 데서 시작된다. 피해 생존자들은 형제복지원에서의 고통도 그렇지만 가해자의 합당한 처벌을 위해 싸우는 과정도 험난하다. 우리의 죄는 그 참혹한 사건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고, 속죄는 그들의 분노에 동참해주는 것이다.

 

소재는 부산의 형제복지원이 1975~19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키며 각종 학대를 가한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3000여 명을 수용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길거리 등에서 발견된 무연고자들은 물론 장애인·고아, 심지어 가족이 있는 일반 어린아이들까지 끌려갔다. 말을 안 들으면 굶기고 구타하여 살해해서 암매장하고 시신을 몇백 만 원 받고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팔기도 하는 등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원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경비원과 경비견으로 철통같이 감시하여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등 악랄한 범죄적 운영으로 인권을 유린했다. 온갖 죄악을 저지른 결과 원생 53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피해자들은 지옥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버려야 했다. 육신은 물론 정신까지 황폐해져 짐승처럼 변해 가는 피해자들…. 

 

▲작가 김영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다.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돼 정부 지원금으로 규모를 키운 원장 박인근! 

 

박인근 원장은 박정희·전두환 등 최고 권력자와 꾸준히 밀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 지원금을 착복하고 원생들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만 제공하는 한편 살인적인 강제노동을 시켜 번 피땀 어린 돈을 수탈하며 일국의 군주인 양 행세했다. 아니, 그 작은 왕국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자기 욕망을 흥청망청 채우고 호의호식했다. 

 

박통의 적자라기보다 일종의 사생아 비슷한 전통령 시대인 1980년대 들어 박인근 원장은 가장 악랄한 통치자로 변모했다. 전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바로 그날 저녁, 그는 한 원생이 거수 경례를 좀 삐뚜름히 했다는 이유로 마구 때리고 짓밟아 반주검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일명 ‘통띠’라고도 불린 성폭행은 소년·소녀를 가리지 않고 무수히 자행되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강제수용소에서는 그런 짓이 늘상 벌어졌는데, 소장 원장 등 최고 권력자들이 장려 혹은 묵인했기 때문이었다. 꼭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간신 같은 수하들이 가장 예쁘장한 소녀 애를 뽑아 갖다 바쳤다. 그래야만 자기들도 원생들의 영육을 맘껏 유린할 수 있을 테니까. 

 

권력자 자신이 직접 나서서 취향대로 어린 희생양을 골라 자애로운 부모인 척 무소불위의 하느님인 척 행세하며 슬슬 야욕을 채우는 경우도 많았다. 법의 사각지대… 전국 각지의 복지원에 그런 야만의 도가니가 숨어 있었다. 

 

형제복지원 교회에서 박 원장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빙자하며 원생들의 죄악을 질타했다. 

 

“인간의 원죄를 씻고 재생하기 위해서는 피땀 어린 노동을 견뎌내고 고통을 달게 받으며 형제복지원의 설립 방침과 규칙에 순종해야 한다!”

 

복종의 강조는 끝이 없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등을 의무적으로 암송해야 했는데, 한 구절이라도 틀리면 매타작을 당했고 끝내 시체로 변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게 과연 교회의 실체인가? 하느님의 복음은 대체 어느 하늘 끝에서 헤매고 있을까? 

 

박 원장이 진짜 신자인지 가짜 사이비인지는 모르지만, 일반 사회 교회 목사들의 방식을 모방하거나 자기 이익에 맞게 왜곡하는 건 뻔히 보였다. 마치 권위적인 목사 앞에서처럼 원생들은 맘속으로 비웃을 뿐 감히 불평불만을 드러내진 못했다.

 

성경 구절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한다는 규칙은 전 세계에서 아마 한국의 교회와 강제수용소밖에 없으리라. 옛날 옛적 신심 깊은 사도들이 신성한 영감을 받아 바이블을 적어 내렸겠지만,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되고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옮겨졌을 땐 변화뿐만 아니라 오류도 많이 섞여 들지 않았을까? 이런 경우엔 차라리 한 낱말 한 구절에 얽매이기보다 큰뜻[大意]을 마음속에 새기는 게 더 하나님과 예수님의 복음에 가까워질지 모른다. 

 

교회 목사와 박인근 원장이 성경을 내세워 신도와 원생들을 겁박하는 건 진리보단 혹시 자기네의 욕망을 추구하는 노릇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글자 틀렸다고 지옥 가라고 악담하며 영혼을 유린하고 패 죽이는 건 바로 예수님 자신이 가장 경계하고 개선하려 했던 구시대의 유물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보면 박인근의 형제복지원은 진리와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 검붉은 복마전이었다. 

 

▲ 형제복지원에서는 1975년부터 시설이 폐쇄된 1987년까지 3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당했고, 513명의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은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형제복지원에 대해 다룬 장면.     

 

“인간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짓”

죄악은 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고 사회 현실과 국가 정책에도 존재한다. 부정부패, 사리사욕, 비인간화(야수화) 등등…. 형제복지원의 경우엔 국가와 사회가 개인에게 붉은 낙인을 찍어 ‘죄악 덤터기’를 씌운 듯 여겨진다. 자기네의 큰 죄악을 무마하거나 숨기기 위해 빈민들을 속죄양으로 삼은 셈이다. 

 

형제복지원에서 감금생활을 했던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들은 대부분 죄가 없었다. 수감자 대부분은 형제복지원을 나온 뒤 고통을 이기려고 술과 약에 의존해 살고 있다. 진상 규명을 통해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작가는 조금이라도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에 대해 알아줬으면 해서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 혹은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짓들이 일어났던 곳이 형제복지원이었고, 인권을 유린했던 수뇌부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중이다.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을 통해 독자들이 피해자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가해자들의 정당한 처벌을 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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