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사회고발 장편소설…형제복지원과 비밀결사<3>

왜 그런 ‘인간 폐물’들을 끌어와 모아두는 것일까?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1/05/07 [15:02]

김영권 사회고발 장편소설…형제복지원과 비밀결사<3>

왜 그런 ‘인간 폐물’들을 끌어와 모아두는 것일까?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1/05/07 [15:02]

불구자와 노약자 모은 소대엔 움직이기 힘든 ‘인간 폐물’들만
원생 한 명당 얼마 계산해 국가 지원금을 복지원에 주기 때문

 

“천국에 좀 편히 가려다가 바보같이 지옥으로 끌려 내려왔지”
“난 장발 단속 걸렸어…머리 깎아주고 간식 준다기에 트럭 탔어”

 

▲ 1970년대 젊은이들이 캠퍼스, 가정 그리고 기존 사회의 벽과 부딪쳐가면서 고뇌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바보들의 행진’ 한 장면.  

 

남자 대열과 여자 대열로 분리된 사람들은 신입소대로 끌려갔다. 악몽에 시달린 밤이 가고 새벽빛이 희븀하게 밝아왔다.


원생들은 새벽 5시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기상 나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고달픈 하루를 시작했다. 인원 점검 후 소대 별로 세면실로 향했다. 국가 지원금 속엔 분명 칫솔과 치약 값이 포함됐을 텐데 원생들은 굵고 거무튀튀한 막소금으로 대충 양치질을 하곤 양손바닥을 모아 받은 물 한 조끔으로 세수까지 끝낸 다음 운동장에 모였다.


박박 깎은 머리에 퍼런 트레이닝복을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꼴이 영락없는 죄수의 모습이었다. 아침 점호를 받고 나서 대열을 맞춰 몇 바퀴 구보하며 새마을 노래와 군가를 불렀다. 

 

내 살던 고향은 형제복지원
날만 새면 꽁보리밥에 썩은 전어젓
울며 불며 또 맞는 형제복지원….

 

입속으로 자그맣게 풍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혹 보조를 잘 맞추지 못하면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식당 밑에 정렬해 있다가 차례가 되면 즉시 올라가 식판에 받은 밥을 재빨리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빨리 먹고 뒷줄을 위해 비켜줘야 했다. 느적거리다간 조장들에게 밥을 뺏길 뿐 아니라 피터지게 얻어맞았다.


아침 7시부터 원생들은 각종 작업장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철공반, 목공반, 미용반, 액세서리반 등이 있었다. 일정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에 모두 다 살인적인 노역이었다. 작업반 책임자는 원장의 동생과 처남들이었다.


신입소대 원생들도 8시 무렵 대부분 노역장으로 끌려갔다. 소대 내부엔 나이 어린 아이들이나 몸이 불편한 이른바 ‘쓰레기 새끼들’만 남았다. 물론 소대장과 조장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교육훈련을 시킨답시고 기합과 폭행을 가했다.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우도록 강요할 뿐더러 만일 한 글자라도 틀리면 야구 방망이가 머리통을 마구 강타했다. 기절했다가 물벼락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청운은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내무반에 남았다. 조장이 다리를 차며 엄살 떨지 말라고 닦달했으나 바지를 걷어올려 상처를 보여주자 말없이 째려보곤 바닥에 침을 찍 뱉었다. 다리가 많이 아픈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능하면 체력을 축적해 놓아야 했던 것이다.


한참 후 10분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청운은 원생 수칙이 빼곡이 적힌 종이쪽을 들고 구석 쪽으로 가서 내용을 가르쳐 주는 척하다가 틈을 보아 여덟 살쯤 된 아이에게 물었다.


“넌 어쩌다 여기 끌려왔니?”


아이는 눈을 들어 청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흐느낄 듯 입술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학교 댕겨 오다가 붉은 완장 찬 아저씨에게 붙들려 왔십니더.”


“뭐라구? 몇 학년인데?”


“1학년예.”


“집에 엄마는 계시니?”


“예, 그런데 공장일 나가서 밤늦게 들어옵니더. 형아야, 엄마가 보고 싶어요. 내 쫌 내보내 주이소예.”


“무서워도 좀 참고 견뎌보자. 기회가 있겠지.”


조장의 눈이 노려보는 것 같아 청운은 슬그머니 벽 쪽으로 가서 기대 앉았다. 좀 있다가 머리가 허연 노인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영감님, 아까 몽둥이에 맞은 머리는 괜찮은가요?”


“아이고, 괜찮을 리가 있나. 아직도 골이 띵 하구먼.”


중얼거리며 피 묻은 정수리를 매만졌다. 하얀 머리카락이 붉게 물들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었다.


“여긴 언제 들오셨어요, 어쩌시다가?”


“사흘 전에 경로당에서 나오는 길에 붙잡혀 왔구먼. 순경 놈 하는 말이, 내가 대통령을 욕했다는 거야. 내가 미쳤다고 남 욕을 하겠어. 맨화투 쳐서 막걸리 한 잔 마시다가 속에 있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민주 세상에 그런 말마저 못하먼 숫제 벙어리가 되라는 거여 뭐여?”


“분하시겠지만 말씀 목소리 좀 낮추세요.”


“내 느낌인데, 어떤 놈이 신고를 했을 거여. 경로당에서 놀던 영감 할매들이 이런저런 소릴 다 지껄이며 서로 입씨름을 벌였는데 하필 나만 끌려 올 게 뭐냔 말여. 대통령 말만 마치 하느님 말처럼 졸졸 따라 외며 숭배하는 꼴통 놈이 있는데 아마 그 늙마 짓일 거라. 내 돈 만원을 서너 해 전에 빌려 가구선 시치미 떼는 놈이걸랑.”


“그야말로 막걸리 반공법에 걸려 드셨군요.”


“헛 참… 그런데 자넨 어쩌다가…?”


그때 조장이 호루라기를 삑 불곤, 다시 제자리에 정렬하라고 외쳤다.


“몸조심하세요.”


“그래, 이것도 인연일 테니 또 보자구.”


“네.”


짧게 인사를 하곤 서로 헤어졌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청운은 일반 소대 중의 청소년 소대로 전출되었다.


그 어린 소년은 아동 소대로, 백발 영감님은 노인 소대로 옮겨졌을 터였다. 그리고 회색 건물의 빈 공간엔 어디선가 억울하게 잡혀온 낯모를 ‘신입’들이 갇혀 교육이라는 이름의 강압과 폭행을 당할 것이었다.


청운이 소속된 곳은 3중대 10소대였다. 불구자와 노약자들을 모아둔 소대도 있다지만 한쪽 다리를 조금 절룩이는 정도론 그곳에 받아주지 않았다. 그 소대엔 스스로 일어나 움직이기 힘든 ‘인간 폐물’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폐물들을 끌어와 모아두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국가에서 원생 한 명당 얼마씩 계산해 지원금을 복지원 측에 주기 때문이었다.

 

▲ 1960년 세상 속에서 사라졌던 학도호국단이란 이름이 1975년 부활했다. 사진은 학도호국단 기념식 장면. <사진출처=국가기록원> 


아침 7시부터 강제노동이 시작되었다. 어린 아이든 노인이든 조금이라도 힘을 쓸 만한 사람은 모두 끌어내 동원했다. 공장은 철공반, 목공반, 제화반, 인형제작반, 미용반, 액세러리반( 인형 눈알 박기, 낚싯줄 묶기, 칵테일에 꽂는 종이우산 만들기, 예수상에 금박 물감 칠하기)  등이 있었는데 청운은 선감학원에서 배운 기술로 인해 목공반에 배치되었다.


목공반에서는 식탁, 의자, 창틀, 바둑판은 물론이고 이쑤시개까지 만들어 내었다. 사실 사회에 나온 후 서울 등지에서 청운은 가구공장과 목공소 같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 기웃거려 보았다. 하지만 대개 기술자를 모집했기에 선감도에서 익힌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견습공으로나마 들어가고 싶었지만, 집도 절도 보증인도 없는 떠돌이를 마뜩찮은 눈으로 바라보며 머릴 흔들 뿐이었다. 여기서라도 제대로 배울 수만 있다면 한 가닥 희망이 보일 성싶기도 했다.


오전 노동이 끝나고 군가를 부르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숨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승리의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라!
우리가 밀려나면 모두가 쓰러져
최후의 5분에 승리는 달렸다!
최후의 5분에 영광은 달렸다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
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싸워라!

 

그러고는 커다란 식당 안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시어빠져 군둥내가 풍기는 김치를 넣고 끓인 수제비 한 그릇이 전부였다. 설익어 생밀가루가 씹히기도 하는 ‘먹이’였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다급히 씹어 삼켰다. 빨리 먹고 나가줘야 밖에서 줄선 채 기다리는 원생들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야, 체할라. 천천히들 먹어!”


조장들이 지켜서서 지껄였으나 빨리 먹고 밖으로 나가 줄서지 않으면 선착순에 걸려 몽둥이 찜질을 당하기 때문에 늑장 부릴 형편이 아니었다. 배는 고픈데 양은 적은 편이라 눈 깜짝할 새 그릇을 비운 사람들은 무척 허전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다시 대열을 지어 일터로 갔다. 공장 앞 마당에서 30분쯤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원생들은 무리지어 둘러서서 족구를 하기도 했고 한쪽에선 탁구를 치기도 했다. 철봉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청운은 낡은 벤치에 걸터앉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녀석이 벤치 한쪽에 와서 척 앉았다.


“야, 넌 운동 안 하니?”


청운을 향해 물었다.


“응, 구경하는 게 더 좋아.”


청운은 상대를 바라보지 않은 채 대꾸했다.


“싱거운 놈이군. 영감 같은 소리나 하구.”


“그러는 넌 왜 앉았냐?”


“떠들고 놀 기분이 아니야. 쳇, 대체 이 꼴이 뭐냐. 좋은 나이에 이런 데 갇혀서….”


그제서야 청운은 눈길을 돌려 녀석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크고 앞이마가 툭 튀어나온 짱구였으나 눈은 작았고 입술은 두툼했다. 청운이 씩 웃자 녀석도 히죽 미소 지었다.


“언제 여기 들어왔니?”


청운이 물었다.


“한 달쯤 됐어. 넌?”


“엊그제.”


“흥, 애송이로군. 앞으로 이 선배님께 많이 배워. 그런데 어쩌다가 여긴 잡혀왔니?”


“남포동 쪽으로 절뚝절뚝 걷고 있는데 태워 준다기에 탔더니 여기로 모셔오네.”


“정말? 바보 같군. 천국에 좀 편히 가려다가 지옥으로 끌려 내려온 셈이야.”


“그럼 넌 지옥인 줄 알고 온 거야? 후훗.”


“그럴 리가! 제기랄, 장발 단속에 걸렸어. 공짜로 머리 깎아 주고 간식용 과자도 준다기에 트럭에 올라탄 거지.”


“나보다 더 멍청한 것 같군.”


“피장파장인걸 뭐. 하핫….”


그때 조장이 호루라기를 불어 휴식이 끝났음을 알렸다. 원생들은 인원점검을 받은 후 명령에 따라 각자가 소속된 공장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봐.”


짱구가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응. 근데 넌 무슨 반이야?”


청운은 녀석의 어깨를 슬쩍 치며 물었다.


“인형반. 어서 가봐. 꾸물거리다가 터질라.”


짱구는 눈을 찡긋하곤 청운과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청운은 목공반으로 들어섰다. 선감학원의 목공반이 기초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데 비해 형제원에서는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어 내부에서 사용할 뿐 아니라 외부로 판매하기도 했다. 대량 주문받아 납품하는 물건도 다양했다.


목공반 외의 다른 공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낚시에 줄을 묶는 일은 주로 아이들과 노인들이 맡아 했는데 외국으로 수출된다고도 했다. 그 거대한 공장에서 원생들의 강제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하다는 얘기였다. 원래는 원생들의 복지를 위해 쓰여져야 마땅한 그 돈은 모조리 원장 일가족의 재산으로 둔갑된다는 소문이었다.

 

<다음 호에도 ‘슬픈 권투’가 이어집니다>


작가 김영권은 누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 비평>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선감도: 사라진 선감학원의 비극>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몽키하우스> <어린 북파공작원>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수상한 선감학원과 삐에로의 눈물> <동상의 꽃꿈> 등이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풍자한 장편 에세이 소설 <잘난 니 똥>이 문예지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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